아프가니스탄 선교 편지
PSC  |  08/25/21  |  조회: 171  

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
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 
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 
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 
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(마 12:18-21)
 

우즈베키스탄 국경을 넘어 출국 하였습니다.
우즈베키스탄 외무부 는 미국 여권 을 가지고 있어도 아프가니스탄 에 있었던 사람 들 에게는 우즈베키스탄 비자 를 주지 않습니다.
이번 에도 정부 고위 관리 가 보증 을 해 주고  차량 을 배려 해주어 국경을 넘어 올 수 있었습니다.
이렇게 탈레반 테러 를 피해 우즈베키스탄 국경을 넘은게 지난 사역 10여년 동안  처음 이 아니고 이미 3 번을 경험 했었습니다. 
아프가니스탄 땅 의 크기 는 남한 과 북한을 합친 한반도 의 3 배 가 됩니다.
카불 공항 에서 13시 간 힌두스크스 산맥 을 운전 하고 오는 저희 학교 인 먼 거리 로 부터 탈출 하기 위해 카불로 간다는 것은
위험 천만 한 일 이고 무엇보다 미군 이 저를 데리러 올 수는 없는 불가능 한 일 이기에 가까운 우즈베키스탄 국경을 
넘었습니다. 
남자 선생님 들 과 정부 관리 와 차를 타고 가서 국경 에서 저의 차례를 기다리며 신문과 TV 가 없고 인터넷 이 없어
빠른 소식을 접할수 없는 우리들 과 달리 탈레반 으로 부터 벗어 나기 위해
카불 에서 올라온 사람 들 을 보았습니다.
요즈음 뉴스 에 나온 탈레반 상황들이 이번에만 일어난 일 들 이 아니라 이 와 같은 일 들이
아프가니스탄 에서는 늘 있어 왔던 일 들 이고 저 또한 그런 현실 속 에서 사역 을 하고 있었습니다.
현지인 들 에게는 바깥 사람 들 만큼 의 충격은 없습니다.
외신 기자 들 이 떠나서 도라 오지 않는 것 은 이미 오래 된 일 입니다.
외신 기자 가 아닌 현지인 들 이 찍은 카불 공항 토막 동영상 과 사진들이 뉴스에 나오는 것 과 달리 
아프가니스탄 나라 와 근접 해 있는 나라들, 이란 파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국경에
몰려 들 있는 상황 에 대해 바깥 사람 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습니다.
찢어진 신발을 옆에 두고 엄마 어깨 에 기대어 있는 여자 아이 에게 제가 신고 있던 신발을 신겨 주고
저 는 배낭에 있는 양말을 신고 그리고 쓰고 있던 부르카 를 주고 국경을 넘었습니다. 


바삐 돌아 가고 있는 카불 과 달리 저 는 학교 일 처리 로 분주 했습니다.
아프가니스탄 에 두 번 다녀 왔었습니다.
한국 지인 몇 분 에게만 기도 부탁 하고 다시 다녀 와야 했습니다.
고위 관리 의 요청에 맞추어 입국 해서 카불 에서 미팅을 마치고 학교 업무 처리를 하고
라마단 이 끝나기 직전 에 출국 해야 했습니다.
왜냐 하면 라마단 이 끝나자 마자  항상 탈레반 이 테러를 일으키고 무더운 여름 하루도 피냄새를 맡지 않고는
그냥 지나가지 않기 때문 이었습니다.
그럼에도 불구 하고 물질 이 정한 기한 에 채워지지 않아 학교 라이센스 일처리를 못하고 있음에
정부 고위 관리 밑에서 일 하는관리 들이 여느때 보다 더 난리 를 일으키고 있음 을 듣고
학교장의 부재 로 매일 같이 학교 선생님 들과 메니져 를 힘들게 해서 다시 들어 갔었습니다.
학교 문 을 닫게 하려고 대적 함 을 알고 있었기 때문 입니다.
외국인 이 학교를 한다는 것 이 관리 들 이 대적 을 하는 것 이지요.
무엇보다 지나고 나서 보니 성령 의 인도 함 이었다 는 것 을 깨달은것이...
왜 내가 이걸 하고 있지 하며 모르는 가운데 에.....처음 아프가니스탄 에서 돌아 오기전 
6 month multi entry visa 를 받아서 나왔습니다.
아프가니스탄 바깥 에서는 1 month single entry visa  만 가능 하고 오직 아프가니스탄 안 에서만
6 month multi entry visa 가 가능 한데 저 는 정부 에서 내 준 학교 라이센스 가 있어서 가능한 일 이고
미리 예비 하신 비자 를 가지고 지체 없이 다시 입국 할 수 있었습니다.


다시 들어온 저 를 보고 선생님 들 은 물론 관리 들이 더 놀랐습니다.
학교 에서 머물면서 아이들 과 함께 하면서 십년 만 에 처음 으로 요청한 미팅 에서 날짜 가 늦어도 요구 하는
모든 일 들을 처리 할테니 천재지변 이 일어 나기전 애는 우리 아이들 학교 문 닫게 하지
말아 달라고 정식으로 말 하고 왔습니다.
여러말 하는 것 보다 고위 관리 만 아는 암투병을 모르는 관리 들이라도 목발 을 짚고 다시 왔다는 그 사실
하나 만 으로도 학교를 운영 하는 것 을 넘어서 제가 얼만큼  우리 아이들을 귀중히 여기는지
많은 것 을 깨달았을 거 라고 학교 선생님 들 이 회의 에서 말 해 주었습니다.
정부 고위 관리 에게 부탁 을 할 수 잇었겠지만 그 것 은 하나님 이 하시는 방법 이 아니라고
생각 했고 정치적 입지 가 필요한 요즈음의 고위 관리 입장 에서 보나
학교장 답게 앞에서 말 해야 할 때 라고 여겼기 때문에 기도로 무장 하고 저 의 소신을
밝히고 좋은 결과를 가지고 떠날 수 있었습니다.
국경을 넘기전 에정부 차량 을 타기 위해 정부 건물 에 갔을때 에도 고위 관리 는 물론 학교 와 연관 된
여러 관리 들 과 마무리 인사 를 잘 하고 왔습니다.
탈레반 을 피해서 떠나는 것 이 아니라 학교 업무 를 마치고 마지막 순간 까지 자신 들을
만나고 떠남 이 그 들 의 심령에 울림 이 있기를 기도 했습니다.


10년 전 80 여명 의 ㅅㄱ사 들 과 Global Meeting of Prayer 으로 카불 에서 모였을때에 
911 테러 와 같은 간접적인 사건 즉 아프가니스탄 바깥 에서 일어난 일 과 같은 큰 일 이 앞으로 아프가니스탄 안 에서
일어 난다면 바로 그때 가 지하 ㄱ회 의 부흥 이 시작 될 것 이다 하고 모두 성령 안 에서 동의 (divine agreement)
하며 선포 한 일 이 있었습니다.
이번 에도 떠나 오기전 협력 하고 있는 지하 ㄱ회 에서 여러번 예배를 함께 드릴 때에
이 사실을 모르는 현지인 교인 들 모두 동일 하게 알고 있는것 처럼 기도 하며 선포 하는 것 을 보고
아프가니스탄 은 이제 끝났다 가 아니고 New Beginning 이제 시작 이다 라고 다시 한번
Confirmation upon Confirmation 을 받았습니다.
1990 년 대 에 칸다할 지역 에  30여 개의 지하 ㄱ회 가 존재 한다는 보고 가 있은 후 
현재 까지 드러 나지 않고 묻혀 있던 많은 지하 ㄱ회 들 이 드러나며 알게 되고 아프가니스탄 의 지하 ㄱ회의 
부흥이 일어 나는 때 가 되었다 고 오랜 시간 동안 사역 하고 있는 우리 ㅅㄱ사 들 은 입 을 모읍니다.
도리어 이와 같이 열방을 위해 깨어 기도 하고 있어야 할 후방의 교인 들이 잠자고 있음이 마음 아팠습니다.
후방이 무너지면 전방이 무너진다!!!
가슴에 각인 하고 중보 해 주십시요!!
먼저 그 나라 와 그 의를 구할때 에 !! 그 위 에 더해 주시는 주님의 진정한 축복 을 누리시기를 간구 합니다!
아프가니스탄 국민 은 없고 오직 카불 국민 만 있다 고 말 하는 현지인 들 의 말 이 있습니다.
이번 에도 카불 중심으로만 움직이는 형세를 보며 마음 이 참 착잡 합니다.
한가지 아이러니 한 것 은 파키스탄 국경에 접해 있는 탈레반 훈련소 가 있다고 잘 알려져 있고
탈레반 주세력 이 있는 잘랄라바드 시 가 아무 움직임 없이 조용 하다는 것 입니다.
정치적 으로 많은 것 을 말 해 주고 있습니다.


솔직히 말 해서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.
이번 처럼 탈레반 정권 등 을 운운 하며 수면 위로 드러내고 말 하기 이전 에도 
아프가니스탄 현지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고 탈레반 횡포는 지금 과 같이 늘 있었던 일 들 이고 바깥 사람 들만
알지 못하고 있었을 뿐  카불 중심 이 외에 현지인 들은
그저 올 것 이 왔구나 하고 도리어 바깥 사람 들 보다 크게 놀랄 것 도 없어 합니다.
저 도 마찬 가지 입니다.
믿음 이 좋아서 가 아니라 전기 가 없어서 폭탄 소리 와 총소리 가 들려도 긴급 이다 하고
기도 편지를 쓰지 못 했었을 뿐 이지 도리어 지금 처럼 전 세계 가 상황을 알게 되었으니
어쩌면 더 잠잠히 있게 될 뿐 인 것 입니다.
곳곳의 많은 사람 들 이 아프가니스탄 을 다시 기억 하고 기도 를 하게 되었을테니까요
제 가 사역 하고 있던 지난 10 년 동안 도 지금 상황 과 별 다르지 않습니다.
단지 바깥 사람 들 이 알지 못하고 있었을 뿐 입니다.
그러나 이제서라도 아프가니스탄 현지 상황 실체 가 드러나서 많은 사람 들 이 기도 할 수 있게
되었으니 도리어 감사한 마음 뿐 입니다.
떠나고자 하는 마음 이 주어지지 않고 있을때에 전혀 연락 을 않던 얼바인 남자 집사님 의 이메일 을 읽었습니다.
동시에 인도 나환자 촌 에 있는 아들이 .....
아무래도 엄마 가 출국 하지 않으려 하겠다 싶은 마음 에 연락 을 했다면서....
엄마 에게 무슨 일 이 생기면 나 는 아무 가족 도 없게 되는 건데 엄마 이번 한 번 만 아들 만 생각 하고
다시 돌아 와 줄 수 없겠냐고 나는 가족 이 엄마 밖에 없는데요 하는 소리 를 듣고
지하 ㄱ회 ㅁㅅ님 과 현지인 교인 들 에게  나누고 모두 의 동의 를 얻고 출국 할 마음을 먹었습니다.
저희 지하 ㄱ회 목사님 은 떠나지 않았습니다.
너 는 공항 에서 만 막지 않으면 언제든지 학교 라이센스를 가지고 비자를 받아서 다시 들어 올 수 있고
무엇보다 바깥 에서 우리의 소식을 사람 들 에게 알리며 함께 기도 하라 고 부탁 하셨습니다.
영국 웨스터민스터 신학교 를 비롯 많은 공부를 하신 훌륭하신 ㅁㅅ 님 이십니다.
사모님 도 떠나지 않으시고 함께 지하 ㄱ회를 섬기고 계십니다.
지하 ㄱ회 에서 알려 오는 소식 들 을 업데이트 해서 기도 제목 들 을 전달 하겠습니다.

참으로 아이러니 한 것은 카불과 멀리 떨어진 미국 영국 카나다 ㅅㄱ 사 들 은 어찌 하지 못하고
정부 와 협력 한 수 많은 카불 에 있는 아프가니스탄 현지인 들 을 먼저 탈출 시키는 것을 보며
모든 일 에 카불 우선 임 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.
72시간 안 에 우즈베키스탄 을 떠나야 하는 Transit Visa 를 가지고 국경을 넘으며 그제서야
우즈베키스탄 을 떠나는 비행기표 가 없고 가지고 있던 것 모두 다 탈탈 털어서  학교 메니져 에게 다 맡기고
달러 5 불 1장 과 1 불 한 장 만 가지고 있음을 공항에 다 가서야 깨닫고 목발 짚은 여자 혼자서
스마트 폰 없이 해야 하는 모습이 아프가니스탄 안 에서 보다 더 Chaos 였습니다.
제발 누구 한 사람 이라도 비행기표 준비 하라고 입금 해 주었기를 간구 하고 간구 하였음에도
아무도 입금이 되어 있지 않아서 발 을 동동 구루며 방언 으로 기도 를 시작 하는데
모든 후원 은 아프가니스탄 학교 로 다 쓰여 지고 마땅히 사역비 를 개인 을 위해 사용 할 수 없음에 
ㅅㄱ사 가 사역비 를 가지고 먹고 싶은 수박 을 사는데 후원금 을 쓸 수는 없을 때 에도 
어느 한 사람 도 어떻게 먹고 사는지 물어 봐 주는 사람 이 없었음을 왜 하필이면 그제서야 
깨닫게 해 주셔서 마음이 얼마나 버거웠던지요!!
아니지 아니야 사람 의지 하지 말고 오직 주님 만 바라 보아야지 도리질 하며 결국 떠나 왔습니다.
암 투병 하며 수박 이 먹고 싶음에 못 사 먹는 것 이 욕심 은 아니지요 하나님...


사람 들 이 사는 것 은 다 똑같음 에도 불구 하고 아프가니스탄은 또 다른 세상 입니다.
저 또한 21 세기 사람 들 이 누리며 사는 것 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음 에도 아프가니스탄을
섬기고 난 이 후 부터 는 현지인 들 처럼 전혀 다른 세상 에 살고 있음을 이번에 깨달았습니다.
마음 과 몸 은 어디 에 있던지 상관 없이 현지인 처럼 피부 로 느끼며 동일한 심정 으로 호흡 하고
있음 을 발견 하였습니다.
뉴스 에서 보여지는 것 이 다 가 아니고  과연 이 번 일 을 통해서 하나님 이 하시고자 하는 일 이 
무엇인지 묻고 있습니다 !!
911 테러  이 후 세월 이 많이 흘렀고 아프가니스탄 사람 들 도 이전 과 많이 다릅니다.
탈레반 도 이전 처럼 동일 하게 할 수 는 없을 거라고 합니다.
저희 학교 가 있는 사람 들 은 카불 과 너무 멀어서 아무런 혜택 이 없다 라고 했었지만 도리어 카불 과 
멀리 있어서 난리 를 겪지 않고  일상매일 생활을 잘 연이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.
학교 공부 시간표 를 변경 하였습니다.
학교 모든 여자 학생 들은 새벽 마다 엄마 와 모스크 에 다녀 오는데 모스크 에서 집 에 막바로 가지 않고
이른 아침 제일 먼저 학교 로 와서 공부 를 하게 하고 있다고 연락 을 받았습니다.

1,아프가니스탄 에 지상 ㄱ회 가 세워 지도록
2.학교 선생님 들 과 아이들 의 안전 을 위해서
3.중보 와 후원 이 멈추지 않고 채워져서 공부 와 선생님 들 생계 가 끊어지지 않도록
4.지하 ㄱ회 목사님 가정과 교인 들 의 안전 과 보호를 위해 기도 해 주십시요!!

며칠 이라도 빨리 이메일 을 보내야 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.
치열한 여정 은 물론 더위를 먹어서 구토 가 멈추질 않아서 제대로 앉지 못해
이제서야 있는 힘 을 다하고 집중 하여 이 글 을 씁니다.
앉아도 울고 서도 울고 누워서 도 울고 
아프가니스탄 때문 에 마음 이 아파 눈물 을 흘리고 있는 저 를
발견 하곤 하지만 Opposite Spirit 으로 무장 하여 반대로 기뻐 하고 믿으며 간구 하며
기도 하려 하고 있습니다.
몸 도 힘들고 마음 도 힘들지만 이미 시작 하신 아프가니스탄 을 향한 하나님 의 구원 의 역사를 바라며
버티고 있습니다.
아프가니스탄 아이들 에게 너 는 뭐 하고 싶니 하고 물어 보면
학교 에 가고 싶어요 라고 말 합니다!!
아프가니스탄 은 끝나지 않았습니다.


사랑 하고 축복 합니다.

헵시바 드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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